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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들이 트럭 짐칸에 빼곡이 실려 어디론가 가고 있다. 그들이 향하는 곳에는 총칼을 든 군인들이 곳곳에 서 있고 한 켠에 있는 커다란 구덩이에서는 시뻘건 불길이 올라온다. 그리고 그 안에는 지금 막 실려오고 있는 소녀들과 같은 차림의 시체들이 참혹하게 널브러져 있다.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가 그린 그림 ‘태워지는 처녀들’ 속 장면이다. 영화 ‘귀향’은 바로 이 그림으로 시작됐다.


열네 살 소녀 정민(강하나)은 경남 거창의 한 마을에서 부모와 함께 산다. 그는 어느 날 집에 들이닥친 일본군에 의해 부모와 생이별하고 기차에 실려 중국의 외딴 곳으로 끌려간다. 이후 정민은 영희(서미지)를 비롯한 소녀들과 함께 일본군 위안소에 배치되고 일본군들의 성 노리개로 전락해 고통스런 생활을 겪게 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는 수식어는 강렬하다. 더군다나 그 실화가 참혹한 고통의 역사라면 그 파급력은 더욱 커진다. ‘귀향’이 단순히 한 편의 영화로만 보여지지 않는 이유다. 이 작품은 실제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을 근거로 당시 사건을 재구성해 만들어졌다. 조정래 감독은 공공연히 이 영화가 할머니들에게 바치는 헌정작이라고 밝히며 ‘문화적 증거’라는 표현까지 서슴치 않았다. 그러니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을 환기시키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가 가진 가장 큰 역할인 셈이다.


영화 속 위안부 소녀들이 겪는 처우는 성 노동 착취라기보다는 차라리 성적 학대에 가까울 정도로 잔인하다. 일본군들은 위안소 입구에 줄지어 서 문자 그대로 ‘돌려가며’ 소녀들을 범한다. 사정없이 뺨을 갈긴 뒤 기절시킨 상태로 강간하는가 하면 생리를 겪는 소녀들에게조차 예외를 두지 않는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카메라의 시선이 벽을 사이에 둔 채 십수 개의 방에서 이루어지는 이 거대한 재난을 바라본다. 이 장면을 보는 순간에는 머리 끝까지 분노가 치민다. 가슴 깊은 곳에서 구역질이 올라온다.



이 영화의 사회적 역할과는 무관하게 만듦새 측면에서는 몇가지 아쉬운 지점들이 보인다. 특히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세 명의 소녀들을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이야기 방식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하다. 폭력 앞에 인권을 유린당하는 앳된 얼굴로 정민에게 연민을 느낄 만 하면 중간중간 현재 시점의 영옥(과거의 영희)이 등장해 캐릭터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 정민의 시점에서 진행되던 서사가 중반 이후 영희의 시점으로 옮겨지는 방식도 다소 투박해 보인다. 여기에 정민과 영옥의 연결고리가 되는 현재의 소녀 은경 또한 중간자 역할을 위해 작위적으로 만들어진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귀향’을 만드는 데는 14년의 시간과 7만 500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후원이 있었다. 많은 배우와 제작진들 또한 재능기부 형식으로 이 영화에 참여했다. 그러니까 '귀향'은 애초에 조정래 감독만의 영화가 아닐 뿐더러 특정 인물을 조명하는 영화도 아니다. 그저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되새겨줄 뿐이다. 이를 대하는 관객들은 분명 고통스럽겠지만, 그 고통을 쉽게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영화가 가진 힘은 바로 거기에 있다. 2016년 2월 24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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